[아미+잭] 언젠가
* 적어도 2부 12권 언저리까진 읽어야 미리니름 당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 시점은 아무래도 63기 막 사수랑 훈련 들어간 즈음?인 거 같음(명확히 두고 쓰질 않아서 그만…). 따지라면 12권 취중진담 언저리???
* 속도광 사수-부사수 콤비도 좋아하는데, 써보기는 드디어 처음 써봄. 그러니 어떤 캐해를 겸해서 썼습니다. 이리저리 다듬으면 바뀔지도 모르지요.
* 저는 카이로스가 언젠가 ‘힐데가 인간을 사랑하기로 마음먹은, 당신들을 사랑해서 다행이야’했던 그 심정을 자기 개인이 오롯하게 겪어봤으면 좋겠어요. 작중에서 그는 아무래도 ‘힐데가 사랑하는 이들의 편에 섰다’는 인상이 좀 강했어…. 좀 더 진심으로 사랑해보도록 해(즐거움)
* 오탈자비문 검사는 안 했다보니, 발견하면 미래의 제가 고칩니다.
26.05.09. 모자랐던 말을 조금 가다듬음
* 난독증이 있는 경우, 좌측 정렬이 읽기 쉽다는 사실을 접해 좌측 정렬로 해두었습니다.
― 너, 정말로 아미한테 잘해야 해. 알았지?
카이로스―잭 블랙은 제 대장이 몇 번이고 신신당부하던 말을 떠올리고 픽 웃었다. 아무렴, 누구 말인데. 다시 말하는데 아미는 나한테 정말 큰 은인이야. 그리고 안 그래 보여서 사람 보는 눈이 좋아. 그러니 적당히 어물쩍 넘기고 속이려 들지 마. 신용이 없군. 그래도 내가 사기를 치진 않잖나. 그건, 음, 맞는 말이긴 한데, 아, 왜 이렇게 물가에 도둑눈송이 놓은 기분이 드냐. 카일한테 네 한탄을 너무 들어서인가? 그럴지도 모르지. 난 카일의 골칫거리였으니. 카일에게서 들었던 제국의 날개는 욕심이 없고 제 사람들에게 잔걱정이 많은 사람이었다. 화룡주로 이름을 떨치던 시기에는 아무래도 카일을 사이에 두고 데면데면했으니 잘 몰랐는데, 여기 지구에서 새 삶을 살고 있자니 금방 알게 됐다.
그리고 지금, 잭은 대장의 빛과 소금이라던 선임과 한 차례 기초 훈련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이었다. 힐데는 이전에 어떤 선임과 순찰 나갔을 때 침묵 속에서 걸었다고 했는데, 저는 전혀 아니었다. 최아미는 언제나 이야깃거리가 끊이질 않았다. 마치 아이들처럼 쉴 새 없이 조잘조잘하는 모습을 보면 왜 대장이 ‘안 그래 보여서’라는 수식을 붙였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 보통은 그렇게 보겠지. 잭은 자신의 눈썰미를 믿었다. 제국에서 이름 떨친 승부사로서의 삶과 여기에서 명성 드높은 드라이버로서의 삶을 통틀어 갈고 닦은 눈이다. 겉모양이 상식을 따르지 않는 경우를 얼마나 보았는가. 당장 밀크만 해도 그렇지. 도둑눈송이가 오래도록 모은 에너지는 단 한 순간이라도 폐령과 맞먹는 걸. 겉모습만으로는 아무것도 파악할 수 없다.
그는 눈을 보았다. 눈빛만은 그리 쉬이 고치기 어려우므로. 그렇게 마주한 저의 사수 최아미는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니다. 거리감을 잘 알고 균형감각이 준수해 생물 사이의 틈을 잘 비집고 설 수 있는 자. 그가 타이탄이었다면 저처럼 사역사였을 가능성도 있으리라.
“확실히 잭은 힐데하곤 다르넹.”
적당히 맞장구를 치고 있는데, 갑자기 말이 훅 치고 들어왔다. 적당하게 굴긴 했어도 대화에 집중하지 않은 건 아니었고 무엇보다 지금 화제는 칼 도우라는 선임이 지난번 탐조 때 봤다던 새 떼에 관한 게 아니었던가? 거기서 왜 갑자기 여기로 뛰었지. 머리 두어 개는 작은 선임에게 시선을 돌리니, 검정과 갈색 어드메인 눈동자가 둥글어졌다.
“어느 쪽이냐면 가끔 울 막내 오빠가 생각나.”
잭은 그 말에 허허로이 웃었다.
“아…. 이거 저 욕하려고 하신 말은 아니죠?”
“그럼. 윤 오빠는 그냥 남들하고 다른 거징. 그러는 잭도 오빠랑 잘 지내잖아. 오빠도 그랬거든. 선에 아예 접근조차 안 하는 놈은 오랜만이라고. 이거 오빠가 매긴 거치곤 꽤 높은 점수양.”
참고로 힐데에 대한 요즘 평은 이랭. 자꾸 깐족거려서 언젠가 다 갚아줄 거라고. 사람 속 썩이는 데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는 백발의 배저를 떠올린 두 사람이 빙그레 웃었다. 그래도 이 화제는 계속되는 모양인지, 아미가 마저 걸음을 옮기며 스스럼없이 말을 이어 나갔다.
“뭐어, 힐데가 나한테 양해 구한 게 뭔진 잘 알겠엉. 잭은 정말로 인간에게 관심이 없더라구.”
이건 대답이 궁했다. 힐데가 신신당부한 바와 같이, 이 사람은 ‘잘 대해야 할 목록’ 중 최상위권에 있는 이라 거짓으로 눙치기도 그랬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미는 곧 짓궂게 웃어보였다.
“물론! 그러는 힐데도 기억 돌아오니까 우리를 햄스터처럼 대할 때가 있는 거 알앙? 10단계만 아니면 우리도 영토 확장하면서 잘 살아왔는데도 그러더라.”
“힐데는 원래 잔걱정이 많은 사람이라.”
“제국에서도 그랬구낭. 힐데답네―응, 그런데 잭은 우리를 햄스터로 봐. ‘처럼’하고 ‘로’의 차이, 알겠엉?”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이제야 이해가 갔다. 대하는 인식의 차이. 자신이 인간을 어떤 생물의 한 종種으로써 대한다는 뜻이겠지. 반면 힐데는 그들을 개별 개체로 보나 타이탄보다는 연약한 이들로 여기는 거고. 틀린 말은 아니었기에 잭은 입을 다물었다가, 눈 깜빡임 한 번에 웃는 낯을 만들었다. 대부분은 눈치채지 못했을 테지만 동체시력이 뛰어나다는 선임의 얼굴에 앳된 미소가 가득 퍼지는 거로 보아 이 사람은 알아챈 모양이었다.
‘힐데가 말한 게 이런 뜻이었나.’
얕본 건 아니었지만 이건 정말 한 방 먹었다고밖엔.
사수는 속내를 맞췄다는 기쁨도, 긍정된 내용에서 나올 법한 화나 속상함 하나 없이 다른 질문을 던져왔다.
“있지, 잭은 힐데가 우리를 좋아하니까 우리 편에 선 거지?”
“순서가 조금 다를 수는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렇죠. …문제가 된다면 더 티가 안 나게 시정하겠습니다만.”
그렇지만 아미는 고개를 내저었다. 질끈 동여맨 머리칼이 좌우로 흔들렸다.
“아닝. 그럴 필요는 없구. 어차피 우리랑 같이 싸우기로 한 건데 뭘 또 그랭. 그냥, 음―,”
“그냥, 뭘까요?”
갑자기 말을 우물거리는 선임에게 되물으니 찡그린 표정이 돌아왔다. 아니, 찡그렸다기보단 구체적으로 말해 누가 문턱에 거나하게 찧은 걸 봤고 그 아픔에 이입하고만 얼굴이라고나 할까.
“그 10단계―카일하곤 소꿉친구 같은 거라며. 그런 사람하고 싸우려면 별루 좋은 기분이 아닐 거라고 생각행. 상관없다고 말했지만, 혹시라도 우울해지면 속으로 담아두지 말고 말해줬으면 행. 난 네 선임이니까! …뭐어, 잭은 힐데하곤 좀 달라서 괜찮을 것도 같은데.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구. 그리구 부사수 걱정하는 게 사수 일이잖앙?”
말을 마치더니 히, 하고 이를 드러내 보이며 웃는 사수. 그 모습을 보며 카이로스는 과거에도 이런 사람을 만났기 때문에 힐데베르트 탈레브라는 자가 인간을 통째로 미워하지는 않기로 마음먹고, 그런 몰이해적인 분노는 부당하다고 여기게 됐으리라 생각했다.
“무거운 이야기는 끝! 아, 동기들하곤 만나봤엉? 어때? 괜찮은 애들 같았는뎅. 하나는 힐데 동기 동생이래.”
“아, 라일 말이군요. 심지가 세 보였죠. 돌은, 글쎄요, 자꾸 제 시선을 피해서 약간 곤란하던 참이긴 합니다.”
“흐응. 그럼 친해질 수 있을 거 같앙?”
무거운 이야기는 끝이라고 해놓고선 은근히 떠보시는군. 지금 지평선에 내려앉는 노을 같은 눈이 가느스름하게 뜨였다가 곧 호선을 그렸다. 아니지, 애초에 떠보는 티를 내면서 말하고 있으니 좀 다른가. 이런 티 나는 행동은 간혹 몇몇 마물도 보인다. 나는 네게 적의가 없으니까 이렇게 드러내는 거라는 신호. 솔직하게 말해달라는 뜻일 것이고, 여기서 거짓과 진실 그 무엇을 말하더라도 이 사람이 흔들리는 일은 없을 테지. 그는 으음—, 하고 부러 길게 침음했다. 이쪽을 바라보는 눈동자에 반짝반짝 기대가 고인다.
“―잘 지내보려고야 하겠지만, 아직은 모르겠네요.”
“응응. 그거면 됐엉.”
있는 그대로 보이기를 택했다. 힐데 같이 사람 좋아하는 이를 곁에 두었으니 이런 타입도 겪는 게 나을 것 같아 그랬는데, 의외로 사수는 흡족해 보였다.
“같이 지내다 보면 친해질 수도 있는 거잖앙?”
힐데도 자기 동기한테 정 붙인 것처럼, 잭도 동기들한테 정 붙이게 될 줄 또 누가 알겠어.
그렇게 말하며 노을을 배경으로 앳된 선임이 활짝 웃었다.
…언젠가 63기 동기들을 진정으로 아끼게 되어버린 잭 블랙이 탄식하며 회상한 한 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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